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장의 논증—진정한 유대인은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라는—이후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질문이다.
2장의 논증—진정한 유대인은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라는—이후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질문이다. 바울은 가상의 유대인 대화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논리를 더 발전시킨다. 유대인의 특권이 완전히 무의미한 것인가? 이 질문에 바울은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번역본: 개역개정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장의 논증—진정한 유대인은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라는—이후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질문이다.
2장의 논증—진정한 유대인은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라는—이후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질문이다. 바울은 가상의 유대인 대화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논리를 더 발전시킨다. 유대인의 특권이 완전히 무의미한 것인가? 이 질문에 바울은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유대인의 가장 큰 특권은 '하나님의 말씀(λόγια τοῦ θεοῦ)'을 위탁받은 것이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새로운 반론이 제기된다: 일부 유대인이 불신앙으로 반응했다면, 하나님의 신실하심(πιστός)이 실패한 것인가? 이에 대한 바울의 답은 단호하다: 결코 아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럴 수 없느니라(μὴ γένοιτο)'는 바울 서신에서 가장 강한 부정 표현으로, '절대 그럴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다음 반론이 제기된다: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더욱 드러낸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벌하시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은가? 즉, 내 죄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강조하는 데 기여한다면 나는 오히려 공로를 세운 것이 아닌가? 바울은 이 논리가 인간적 사고방식임을 인정하면서('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즉시 반박한다.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이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다시 '그럴 수 없느니라'로 강하게 반박한다.
만일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으로 심판을 받으리요
▸5절의 반론이 개인화되어 다시 제기된다.
또는 어떤 이들이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비방하며 우리가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느냐 하는데 그들이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7절의 논리를 일관되게 따르면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자'는 결론이 된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8절의 논의를 정리하며 핵심 결론으로 나아간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0-18절은 구약 성경의 연쇄 인용으로, 모든 인류가 죄인임을 증명한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죄는 지성(깨닫는 자도 없고)과 의지(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치우쳐(ἐξέκλιναν)'는 올바른 길에서 벗어남을, '무익하게 되고(ἠχρεώθησαν)'는 하나님의 목적에 쓸모없게 됨을 의미한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언어와 입의 죄악을 세 개의 생생한 이미지로 묘사한다.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시편 10:7에서 인용된다.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고
▸이사야 59:7에서 인용된다.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이사야 59:7의 계속된 인용이다.
평화의 길을 그들이 알지 못하였고
▸이사야 59:8에서 인용된다.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시편 36:1에서 인용된 구약 인용 목록의 마지막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10-18절의 구약 인용들의 목적이 제시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1:18-3:19 전체의 최종 결론이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이제는(νυνὶ δέ)'은 구원 역사의 전환점을 알리는 신호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임하는지 명확히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διὰ πίστεω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2절의 '차별이 없다'의 이유가 제시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칭의(義認)의 방식이 세 단어로 선언된다: '하나님의 은혜로(τῇ αὐτοῦ χάριτι)', '값 없이(δωρεὰν)',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ἀπολυτρώσεως)으로.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화목제물(ἱλαστήριον)'은 구약에서 속죄소, 즉 대제사장이 속죄일에 피를 뿌리던 언약궤 뚜껑을 가리키는 단어다.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의 목적이 두 겹으로 제시된다: (1) 하나님 자신이 의로우심을 나타내는 것, (2)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는 것.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이신칭의의 윤리적 함의가 제시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3장의 중심 명제가 직접적으로 진술된다.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이신칭의 교리의 보편적 함의가 제시된다.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하나님의 단일성(유일신론)이 이신칭의의 근거가 된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마지막 반론: 믿음을 강조하면 율법이 필요 없어지지 않는가? 바울의 강한 부정: '그럴 수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