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와 원한

성경의 원수 사랑(love your enemy)과 불경의 원친평등(怨親平等)을 비교합니다. 두 전통 모두 적에 대한 증오를 넘어서라고 가르치며, 그 방법과 근거에서 깊은 대화가 가능합니다.

원수에 대한 태도

성경

Ἐγὼ δὲ λέγω ὑμῖν, ἀγαπᾶτε τοὺς ἐχθροὺς ὑμῶν καὶ προσεύχεσθε ὑπὲρ τῶν διωκόντων ὑμᾶς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불경

以怨報怨,怨終不滅。以德報怨,怨乃可滅

원한으로 원한을 갚으면 원한은 끝내 사라지지 않나니, 덕으로 원한을 갚으면 원한이 비로소 사라지느니라.

비교 해설

예수의 '원수를 사랑하라'와 법구경의 '덕으로 원한을 갚으라'는 거의 동일한 윤리적 방향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하나님 아버지의 완전함을 닮아가는 것이 그 근거이고(마태 5:48), 불경은 인과법의 통찰이 그 근거입니다. 방법에서도 유사한데, 예수는 '기도'를 통해, 붓다는 자비 수행(慈悲修行)을 통해 원수에 대한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용서의 힘

성경

λέγει αὐτῷ ὁ Ἰησοῦς· οὐ λέγω σοι ἕως ἑπτάκις ἀλλὰ ἕως ἑβδομηκοντάκις ἑπτά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불경

忍辱仙人被歌利王割截身體,無有嗔恨。何以故?我於爾時,無我相、無人相、無衆生相、無壽者相

인욕선인(忍辱仙人)이 가리왕(歌利王)에게 몸이 잘릴 때에 성냄과 원한이 없었나니, 무슨 까닭인가? 내가 그때에 나의 모양도 없고, 남의 모양도 없고, 중생의 모양도 없고, 수명의 모양도 없었기 때문이니라.

비교 해설

예수의 무한한 용서와 인욕선인의 절대적 인욕(忍辱)은 모두 용서의 한계를 철폐합니다. 예수에게서 용서의 동력은 하나님의 용서를 먼저 받은 감사이고, 인욕선인에게서 인내의 근거는 자아의 공(空)함에 대한 통찰입니다. 두 전통 모두 용서가 약함이 아니라 가장 강한 힘임을 보여주며, 상대방뿐 아니라 자신을 원한에서 해방시키는 길임을 가르칩니다.

적을 벗으로

성경

ἀλλὰ ἐὰν πεινᾷ ὁ ἐχθρός σου, ψώμιζε αὐτόν· ἐὰν διψᾷ, πότιζε αὐτόν· τοῦτο γὰρ ποιῶν ἄνθρακας πυρὸς σωρεύσεις ἐπὶ τὴν κεφαλὴν αὐτοῦ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불경

願一切衆生得安樂,願一切衆生離苦難。願一切衆生不失所得安樂,願一切衆生怨親平等

원하노니 일체 중생이 안락을 얻고, 원하노니 일체 중생이 고난을 떠나며, 원하노니 일체 중생이 얻은 안락을 잃지 않고, 원하노니 일체 중생이 원수와 친한 이를 평등히 대하기를.

비교 해설

로마서의 '원수에게 선을 행하라'와 자비경의 '원친평등'은 모두 적대관계를 선한 관계로 전환하는 실천을 가르칩니다. 성경은 선행을 통해 원수의 마음을 녹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불경은 자비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에서 원한과 친밀의 차별을 지우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두 전통 모두 적을 벗으로 만드는 길이 무력이 아닌 사랑과 자비임을 확신하며, 이것이 인류의 가장 숭고한 영적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