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와 무아

성경의 옛 사람 벗음과 불경의 무아(無我, anatta)를 비교합니다. 자아에 대한 두 전통의 근본적 성찰과 변화의 길을 함께 살펴봅니다.

참된 자아

성경

Χριστῷ συνεσταύρωμαι· ζῶ δὲ οὐκέτι ἐγώ, ζῇ δὲ ἐν ἐμοὶ Χριστός· ὃ δὲ νῦν ζῶ ἐν σαρκί, ἐν πίστει ζῶ τῇ τοῦ υἱοῦ τοῦ θεοῦ τοῦ ἀγαπήσαντός με καὶ παραδόντος ἑαυτὸν ὑπὲρ ἐμοῦ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불경

自己為自依,他人何可依,自己善調御,證難得所依

자기 자신을 스스로의 의지처로 삼으라, 다른 사람이 어찌 의지처가 되겠는가. 자기를 잘 다스리면 얻기 어려운 귀의처를 증득하리라.

비교 해설

바울의 '내가 아닌 그리스도가 산다'와 법구경의 '자기를 스스로의 의지처로 삼으라'는 일견 반대처럼 보이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 만납니다. 바울이 부정하는 '나'는 죄에 지배받던 옛 자아이며, 법구경이 세우는 '자기'는 수행을 통해 다스려진 자기입니다. 두 전통 모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세속적 자아를 문제시하며, 변화와 수행을 통해 참된 자기를 발견하거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얻는 길을 제시합니다.

자아의 환상

성경

ὃς γὰρ ἐὰν θέλῃ τὴν ψυχὴν αὐτοῦ σῴζειν ἀπολέσει αὐτήν· ὃς δ' ἂν ἀπολέσῃ τὴν ψυχὴν αὐτοῦ ἕνεκεν ἐμοῦ εὑρήσει αὐτήν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불경

若菩薩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即非菩薩

만약 보살에게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니라.

비교 해설

예수의 '목숨을 잃어야 찾는다'는 역설과 금강경의 '아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다'는 선언은 자아에 대한 집착이 영적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임을 공통으로 지적합니다. 기독교에서 자기를 내려놓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기를 발견하기 위함이고, 불교에서 아상을 놓는 것은 공(空)의 지혜 안에서 무한한 자비의 존재가 되기 위함입니다. 두 전통 모두 자아를 움켜쥐는 것이 역설적으로 자아를 잃게 한다고 가르칩니다.

새로운 존재

성경

ἀποθέσθαι ὑμᾶς κατὰ τὴν προτέραν ἀναστροφὴν τὸν παλαιὸν ἄνθρωπον τὸν φθειρόμενον κατὰ τὰς ἐπιθυμίας τῆς ἀπάτης, ἀνανεοῦσθαι δὲ τῷ πνεύματι τοῦ νοὸς ὑμῶν, καὶ ἐνδύσασθαι τὸν καινὸν ἄνθρωπον τὸν κατὰ θεὸν κτισθέντα ἐν δικαιοσύνῃ καὶ ὁσιότητι τῆς ἀληθείας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불경

照見五蘊皆空,度一切苦厄

오온이 모두 공함을 비추어 보시고 일체의 고통과 재액을 건너시느니라.

비교 해설

에베소서의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와 반야심경의 '오온이 모두 공함을 비추어 보라'는 모두 현재의 자아를 넘어서는 전환을 말합니다. 기독교에서 이 전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며, 불교에서 이 전환은 자아의 공성을 통찰하여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새로운 자아의 '입음(창조)'을, 불교는 고정된 자아의 '비추어 봄(통찰)'을 강조하지만, 두 전통 모두 변화 이전의 자아에 머무르는 것을 거부합니다.